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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부부 35만불 별채, 월수익 4500불

  ━   원문은 LA타임스 5월13일자  ‘They spent $354,000 to build a modern ADU. Now they rent it out for $4,500 a month’ 제목의 기사입니다.     캐티 마키스 텔레스와 스콧 새버리 부부는 6개월간 LA에서 아파트를 찾다가 부동산 정보앱인 질로(Zillow)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우리는 ‘이게 실제 존재하는 집이야?’라고 생각할만큼 마음에 들었어요.”   텔레스가 이주한 집은 LA한인타운에서 북동쪽 10마일 떨어진 이글락(Eagle Rock) 지역의 뒷마당 별채(ADU)였다. 모던한 스타일의 이 별채는 투베드룸과 맞춤 제작한 자작나무(birch) 캐비닛이 붙어있는 최신식 주방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 지어진 LA 단독주택에서만 볼 수 있는 긴 진입로와 샌게이브리얼산의 전망을 자랑하는 작은 마당도 딸려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믿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1000스퀘어피트의 차고를 개조한 이 ADU는 실제 존재했다. 한인 건축가 부부 정주영씨와 장은씨가 사는 본채인 1923년생 스페인식 방갈로 주택 뒤에 지어졌다. 정씨 부부는 열살, 열 네살 두 자녀와 함께 본채에 살고 있다.   제품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는 텔레스는 이 ADU가 절친한 친구 집에서 걸어서 4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운명’이었다고 생각했다.   지난 2021년 이 ADU가 처음 주택 렌탈 시장에 나왔을 때, 최소 30~40명이 보러 왔다. 대부분은 비싼 임대료 때문에 진지하지 않았지만, 정씨 부부는 그동안 완벽한 세입자를 두 차례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세입자는 3년간 살다가 아기를 낳게되자 가족과 가까운 미시간으로 이주했다. 텔레스 부부는 두번째 세입자다.   장씨는 “우린 한국에서 이민 와서 이곳에 가족이 없기 때문에, 가족을 위한 추가 공간이 필요 없었다”면서 “ADU는 우리 부부의 건축 실력을 보여주고 추가 수입을 얻는 일거양득의 방법이었다”고 ADU를 짓게 된 계기를 설며했다. 그러면서 “두 세입자 커플이 성향이 비슷하다. 30대 중반에 재택근무를 하고 디자인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씨 부부는 7년 전 3베드룸 주택을 사면서 뒷마당에 두 번째 유닛을 추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가주법을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수년간 고민한 끝에 35만4000달러를 들여 차 2대용 차고를 ADU로 변환했다. 현재 렌트비는 4500달러다. LA지역 2베드룸 주택의 중간 월 임대료는 3600달러다. 정씨 부부의 ADU가 있는 이글록 지역은 3250달러로 다소 낮다.   정씨는 “ADU에는 건축가인 우리 부부의 많은 고민들이 그대로 녹아있다”면서 “세입자들이 본인들이 소유한 주택처럼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ADU는 독립된 주택처럼 느낄 수 있도록 잔디가 심어진 긴 진입로 끝에 위치하고 있다. 진입로에는 차를 주차할 수 있는데, 이웃에서도 문제 삼지 않는다. 건물 뒤쪽 뜰도 넓어 야외 생활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주법에 따르면 ADU가 대중 교통 정거장이나 역사 보존 지구에서 반 마일 이내에 있는 경우 주차 공간을 짓지 않아도 된다.   텔레스는 “정씨 부부 말대로 정말 내 집 같다”면서 “우리 부부는 항상 패티오에서 아침 커피를 즐긴다. 정말 평화로운 공간”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ADU의 주방에는 30인치 포노(Forno) 개스 레인지와 전기 스팀 컨벡션 오븐, 피셔앤파이클(Fisher & Paykel) 붙박이형 냉장고가 갖춰져 있다. 또 마당을 향해 있는 오픈 플랜 거실도 고즈넉하다. 두 개의 침실과 욕실로 향하는 복도에는 공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수납 공간과 세탁기와 건조기를 넣었다.   ADU는 스페인 스타일의 본채와는 달리 모던하고 미니멀을 강조한 디자인이다. 건물 3개면의 창문은 이웃으로부터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만들었다.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한 정씨 부부는 남가주건축학교인 SCI-Arc에 유학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씨 부부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대담한 기하학적 형태와 드라마틱한 평지붕, 흰색 톤 및 자작나무를 사용해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로든 가구를 배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ADU의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야외 패티오에 그늘을 만드는 돌출된 경사진 지붕선이다. 거친 느낌의 외관 코팅도 눈길을 끈다. 정씨는 “자갈과 모래를 섞은 전통적인 한국식 적용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돌처럼 작용하여 열을 저장해 단열 효과가 높다.     텔레스는 “안은 시원하고 쾌적하다. 이런 디자인의 집은 임대 시장에서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매끄럽게 연마된 콘크리트 바닥은 미니멀한 디자인과 잘 어울리고, 복도의 단일 채광창은 캘리포니아의 햇빛으로 내부를 가득 채운다.   넉넉한 수납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붙박이형 스토리지를 제작하는데만 4만 달러를 지출했다. 충분한 캐비닛과 옷장 덕분에 텔레스 부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때 임대했던 1500스퀘어피트의 주택보다 훨씬 넓은 것 같다고 했다.     텔레스의 남편 새버리는 수납장의 자작나무 합판 문을 열고 스포츠 장비, 여행 가방 및 기타 물품을 보여주면서 “정리가 안 돼 엉망”이라고 농담했다. 텔레스는 “우리 부부는 깔끔한 편이라 저장 공간이 많아 만족한다. 모두 사용하지도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정씨는 3년 전 첫 세입자가 입주한 첫날밤을 회상하며 “그날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며 “혹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느라 밤새 뒤척였다”고 말했다. ADU의 좋은 점으로 그는 별채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정씨는 “내 집 뒤뜰에 집을 짓게 되면 감독하기가 정말 쉽다”고 말했다.   세입자 텔레스에게 ADU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이 무엇인지 묻자, 한 가지로 좁히기 어려워했다.     그녀는 “집 안에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움직임을 사랑한다. 채광 디자인은 매우 의도적이고 독특하다”면서 “또 친구들이 오면 공간이 넉넉해 편하다. 깔끔한 건축선도 우리의 미학에 딱 맞다”고 말했다.   텔레스 부부는 담 너머에 있는 집주인 정씨 부부와의 개인적인 친분도 즐긴다고 했다. 그녀는 “집주인과 세입자라는 거래를 넘어 개인적 친분을 맺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정씨 부부도 같은 생각이다. “최근에 커플끼리 함께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는 정씨의 말에 텔레스씨는 “우리 부부의 실력이 점점 늘고 있다. 재대결을 기대하라”고 응수하며 웃었다. 글=리사 분 기자 사진=아만다 비야로사 프리랜서월수익 별채 정씨 부부 장씨 부부 우리 부부

2024-05-15

[독자 마당] 95세의 삶

우리 부부는 고령에도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했다. 또 아들에 이어 손자도 치과의사가 되었고, 증손자를 만나는 기쁨을 주신 것에도 감사했다. 몸의 움직임이 자유스럽지 못한 아내가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준 것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이런 감사 고백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응급실을 거쳐 양로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회복이 어려워 존엄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까지 악화됐다. 나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큰 충격과 슬픔을 겪었다.     돌이켜 보면 아내와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다. 특히 아내와 함께했던 이민생활 40여 년은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리커스토어, 마켓도 운영했고, 친구의 원단공장에서 야간 근무도 했었다.     우리 부부는 고생스러웠지만 잘 성장해 가는 아이들이 큰 보람이었다.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은 이제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부부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었다. 전국의 유명 대학에 진학한 자손들의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도 우리 부부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은퇴 후에는 미국의 유명 관광지를 두루 여행했고, 한국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90세 생일에는 자녀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감사예배에 많은 지인을 초대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 했던가. 아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먼저 떠나야지” 했던 소망이 허사가 되었다. 인생사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먼저 간 아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세상에서 못다 한 정과 사랑, 하늘나라에서 만나 마음껏 나눕시다. 사랑합니다.”      이승원·요바린다독자 마당 감사 고백 사랑 하늘나라 우리 부부

2024-02-06

[열린 광장] 이혼 방지 대화법

‘집에 도둑이 침입했는데 무기는 갖고 있지 않았다. 집주인이 도주하는 절도범을 향해 총격을 했다. 이는 정당방위일까, 과잉방위일까?’   우리 부부의 대화를 목격한 아들의 비유다. 남편은 성격이 급하고, 나는 논리적인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의견이 엇갈리면 쉽게 싸움으로 고조되고 상대를 탓하기 시작한다.  아들은 “아빠가 화를 잘 내는 건 사실이지만 엄마도 과민 반응을 한다”며 “5초만 참았다가 대답해 보면 어때?”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자녀에게서도 배울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을 생각하는 많은 부부가 성격 차이가 이유라고 한다. 성격 차이가 없는 부부가 있을까? 다만 그 차이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이혼으로 향하는 부부도 있다.     불행한 부부는 말로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다. 대화의 내용보다 화법과 태도가 더 문제 되는 경우도 많다. 성격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화법에 따라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기도 한다.  가트만 (Gottman) 박사는 수천건의 부부 사례 연구를 통해, 이혼으로 가는 부부의 특징을 찾아냈다. 그에 따르면 안정적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부는 긍정적인 언어를 부정적인 것보다 5배나 많이 사용하는 반면, 불화를 겪고 있는 부부는 부정의 언어를 긍정의 언어보다 8배나 많이 쓴다는 것이다.  사실 가트만 박사의 연구 결과는 대단한 발견이 아니다.  이미 성경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기록하고 있고, 한국 속담에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지 않나.       지혜의 왕 솔로몬은 더 좋은 방법을 알려준다. 유순한 대답이 진노를 삭히고 화를 잠재울 수 있다고 제시한다.  즉, 비난과 부정의 말을 상대가 하더라도 내가 부드러운 말로 대응하면 진노를 삭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대화법은 내가 지배(control)할 수 있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대화를 지배해 갈 수 있다는 의미다.     상대의 말버릇을 탓하기보단 본인의 반응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남편으로부터 “당신 살 좀 빼, 관리 좀 해야겠어”라는 말을 들으면 아내는 무척 화가 난다.  갱년기에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은데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 누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살이 쪘단 말인가?  그러나 5초만 참자.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제 몸매에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같이 등산이라도 다닐까요?”라는 식으로 답을 하면 어떨까   부부 사이에 성격 차이, 자녀 교육법의 차이, 습관·생활방식이 모두 다를지라도, 긍정의 언어를 쓰고 긍정의 반응을 보이면 이혼을 예방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언어습관은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답습하게 된다.  부정적 언어를 많이 쓰는 부부가 부정적 자녀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먼저 깨달은 사람이 부정적 언어습관을 의식적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가정을 살리고 싶은 부부들이여!  오늘부터 긍정의 언어습관을 갖겠다고 결심하면 어떨까?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정을 살린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감사해요.  힘들었겠구나.  잘하고 있어요.  멋있어요.  힘내세요….”  찾아보면 상대에게 해줄 좋은 말들이 너무나 많다.     점점 각박해지고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남편에게,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혼을 막고 행복을 불러올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쉽고 좋은 방법이 있을까?   이서연 / 변호사열린 광장 대화법 이혼 부정적 언어습관 수천건의 부부 우리 부부

2022-11-21

[이 아침에] 쓸개 없는 우리 부부

 남편과 나는 쓸개 없는 사람이다. 불과 몇 년 차이를 두고 그리 됐다. 남편은 폐 CT를 찍다가 쓸개에 물혹이 발견돼 제거했고 나는 돌이 있어 떼어냈다.     5년 전 한국에서 수술을 했다. 이른 새벽 긴 병원 복도를 걸어갔다. 보호자와 같이 온 사람은 신고 있던 신발을 건네주고 소독된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나는 신발을 받아 줄 사람이 없어 침대 끝에 매어 두었다. 새벽 공기가 서늘했다. 벗어 놓은 신발을 다시 신지 못하게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 슬픔이 몰려왔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배에 생긴 네 개의 구멍에는 거즈가 붙어 있었다. 의사가 건네준 플라스틱 병에 콩알 만한 돌이 다섯 개나 들어 있었다.     돌을 보며 생각했다. 도를 닦아 경지에 이른 스님의 몸에서는 사리가 나온다는데 나는 어찌하여 쓸데없는 돌멩이만 지니고 살았는가. 그동안 화를 너무 많이 내고 살아 돌멩이로 만들어졌을까. 쓸개 빠진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중학교 시절 맹장을 떼어냈다. 몸에서 다른 장기를 떼어낸 것이 두 번째인 셈이다. 맹장 없이도 지금까지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니 쓸개가 없어도 별일 없을 것이다.     다음엔 또 어떤 장기에 문제가 생길까. 늙는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일까. 젊은 시절 세상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산다는 것은 상처를 하나씩 더해 가는 것인가 생각한 적이 있다. 지나고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있던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불필요한 것이 혹처럼 붙기도 한다.     쓸개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사는 일이 어려운지 모르겠다. 화를 삭이고 잘 다스려야 할 나이에 여전히 작은 일에 화를 낸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작은 일에 화를 낸 자신 때문에 또 화가 난다.     오늘도 작은 일에 화를 냈다. 어찌 보면 중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받는 약인데 준비해 놓지 않아 약국을 다시 가야했고, 전화로 주문한 음식은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잊고 있어 오래 기다렸다. 의자 모서리에 정강이를 부딪혀 피를 보기도 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화가 났다.     남편은 쓸개를 떼어낸 때문인지 갱년기가 온 탓인지 요즈음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젊을 때는 강하고 거침없던 사람이 TV에 나오는 잔혹한 장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쓸개의 다른 이름인 담낭에서 ‘담대하다’라는 말이 나왔다더니 담낭이 없어지며 담대함도 사라졌나 보다. 점점 자잘한 존재가 되어간다.     쓸개 없는 인간 둘이 한 집에 산다고 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리 높여 다투지는 않는다. 서로 의견이 달라지면 남편은 슬며시 자리를 피하고 나는 입을 다문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어도 사는 모습은 마찬가지다.   쓸개 빠진 인간이 되었으니 실실 웃으며 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쓸개 없는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지 않을까. 갈등할 필요 없이 웃기만 하면 될 터인데 그게 어렵다. 쓸개를 떼어냈으니 화도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연실 / 수필가이 아침에 쓸개 부부 우리 부부 새벽 공기 의자 모서리

2021-12-19

[은퇴는 처음이라서] 저녁이 있는 삶에 이르는 길

 남편과 나는 몇 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만약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사업체가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있었더라면 굳이 그것을 그만둠 없이 평생을 할 생각도 있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 부부가 하는 일은 자영업이어서 거기에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원한다면 그것에 평생 종사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아무 할 일이 없는 것보다는 소일거리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자리가 잡힌 사업체에서 손을 떼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잦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아온 것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미국에서 살아왔으면서도 늘 미국을 쉼터라기보다는 일터라고 여겨 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묽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강해지고, 나이 들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 남편은 이곳에서 이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는 일한 뒤의 편안한 쉼이 있는 저녁 시간을 놓치고 바로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두려워하고 경계해왔다. 그래서 쉼이 있는 저녁을 고향에서 맞는 일과 평생 일을 놓지 않는 것을 둘 다 할 수 없다면 그중 한 가지를 확실히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옛말에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삶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고, 뒷방에 나앉는 신세가 될 것이며 몸과 마음이 모두 무력해지고 병들고 시드는 늙음을 맞게 되는 것이 우리 모두에 닥칠 현실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늙음과 어둠이 닥치기 전에 쉼과 여유가 있는 저녁의 시간을 갖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부부가 이렇게 오랫동안 공들여 은퇴를 계획하는 이유이다.   옛날 농경사회였다면 기력이 다해 일손을 놓는 날이 은퇴의 시기였을 것이며 대가족들이 서로를 부양하는 것이 노후대책이었을 것이다. 만약 고향에서 쭉 살아온 경우였다면 은퇴는 일을 언제 그만두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는 삶의 저녁 시간으로 이르는 길은 정밀한 계획과 과감한 선택을 통해서 찾아가고 확보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저녁이 있는 삶으로 가는 길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는 최고의 은퇴 대책은 평생 현역으로 남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젊어서 폭풍처럼 일하다가 젊어서 은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한국보다는 미국이 더 낫고 이상적인 사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은퇴 후 오히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은 운에 의해 어쩌다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주변 상황과 여건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길은 각자의 노력과 선택과 집중 때문에찾아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일이므로 스스로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이 선택과 집중인지 모른다. 어느 한 가지를 확실하게 포기함으로써 다른 한 가지는 더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이 저녁의 시간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곧 어두운 밤이 닥쳐올지 모른다. 위선재 / 웨스트체스터은퇴는 처음이라서 저녁 저녁 시간 은퇴 대책 우리 부부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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